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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K팝·싸이… '한국 스타일' 그 원초적 유전자는 무엇?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9-17 11:42

김기덕 감독의 베네치아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외국인 관광객 월(月) 100만명 돌파, 그리고 K팝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세계인의 눈이 ‘한국 스타일’에 쏠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한국인의 문화 DNA’는 과연 무엇일까. 조선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기획으로 2012년에 주목할 ‘한국인의 문화 DNA’를 연재한다.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이 통영오광대 보존회를 만나 ‘해학’이 뭔지 이야기를 나눴다.


"너희 양반들 듣거라. 느그들 죄를 보니 능지처참해야 마땅하나 차마 죽이지 못하고 용서할 터이니 이 길로 돌아가서 농민을 도우렸다!"

말뚝이의 호통이 떨어지자 탈을 쓴 양반들이 "예이-"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흥겨운 태평소 가락이 별채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팀이 객석에서 "얼쑤!" 추임새를 넣는다.

13 일 서울 성북동 삼청각 유하정에서 조선시대 '용감한 녀석들'과 21세기 '용감한 녀석들'이 만났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통영오광대'를 지키는 보존회(회장 김홍종)와 개그맨 박성광·정태호·신보라·양선일이 만난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해학'의 원형을 찾기 위해. 신광철 한신대 교수가 대화를 풀어갔다.

해학, 양반과 권력층을 풍자

신광철 한국인의 해학은 현실을 익살스럽게 비틀어 웃음을 이끌어냄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죠. 익살스런 풍자를 통해 '함께 웃는' 긍정 마인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양 '유머'와는 다릅니다.

김홍종 통영오광대는 조선시대 서민들 놀이마당이었죠. 지배층에 받던 억압을 탈을 쓰고 분출한 겁니다. 당시 오광대는 '용감한 녀석들'보다 더 인기가 많았어요.

박성광 '용감한 녀석들' 콘셉트도 '권력'에 대해 할 말 하는 겁니다. "서수민 피디, 잘 들어. 당신, 못생겼어!" 하면 객석에서 빵 터져요. 평소 윗사람한테 못 했던 속말을 저희가 대신 외쳐주니까 대리 만족하는 것 같아요.

13일 서울 삼청각 유하정에서 개그콘서트‘용감한 녀석들’팀이 통영오광대 보존회와 어우러져 한바탕 신명나는 난장을 벌였다. 앞줄 왼쪽부터 김홍종 보존회장, 김옥연(각시 탈), 개그맨 박성광, 신보라, 양선일, 정태호. /이준헌 기자 heon@chosun.com
정태호 개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를 알리는 '알림이' 역할도 하게 됩니다. 사실 저희가 답을 내놓고 외치는 건 아니에요. "요즘 이런 나쁜 일이 있다고 한다. 화가 나지 않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면 관객들이 뒷말을 만들어 주세요.

김홍동 그게 바로 오광대가 하던 역할입니다.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며, 사회 변혁의 힘을 가진 게 오광대죠. 일단 화두를 던져주면 관중이 '맞다' 하면서 동참하는 것. 요즘 성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데 그 시대에도 그랬어요. 넷째 마당 '농창(弄娼)탈'이 바로 그런 내용이죠. 문란한 성 문제와 처첩 갈등, 파계승 풍자 등을 담고 있어요.

노래·춤·콩트가 어우러진 무대

정태호 아까 공연 때도 여기저기서 '얼씨구' '좋다!' 했잖아요. 저희도 코너 짤 때부터 관객과 함께할 노래를 생각했어요. 힙합 공연에서 "세이, 요오!" 하면 따라 외치는 것처럼요.

신광철 통영오광대와 용감한 녀석들은 세태 풍자라는 내용, 춤(제스처)과 노래(대사)의 결합, 마당(판)을 통해 공연자와 청중의 소통이 이뤄지는 형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정태호 탈을 쓰고 공연하는 장치도 비슷해요. 탈을 쓰니까 용감해지잖아요. 저희도 선글라스 끼고 가발 쓰면 희한하게 용감해져요(웃음).

현실을 웃음으로 넘는 긍정의 힘

신광철 1970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펜(PEN)대회에서 황순원 선생이 "한국의 해학은 예술의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생활에서 직접 솟아난 것"이라 했어요. 우리 해학의 근본적인 힘이 여기 있습니다.

김홍동 그럼요, 오광대는 관객의 추임새로 하나 되는 수평형 무대입니다. 광대가 주인공이 아니라 앉아 있는 청중 자체가 광대이고, 관중을 끌어내는 게 광대의 역할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광대는 '화합의 아이콘' 아니겠습니까?

신보라 예전부터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던 광대 역할을 제가 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신광철 단순 풍자라면 너무 아프게 끝나요. 풍자(諷刺)의 '자(刺)'가 '찌를 자'자거든요. 그런데 해학(諧謔)의 '해(諧)'가 바로 '화합할 해'자, 즉 풍자와 함께 해학이 곁들여진 것. 현실 문제를 마당으로 불러내 한바탕 웃고, 으르고, 달래며 다시금 세상을 함께 살 만한 것으로 만들 힘을 나눠 갖는 것이 해학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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